내 삶의 색깔을 찾아준 그 남자 – 1장. 주인공의 일상과 공허함 (회색빛 일상)



아침 여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진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이다. 스물삼 년 동안… 아니, 정확히는 결혼 전부터 계산하면 더 오래일 것이다. 일찍 일어나는 게 몸에 밴 지 언제부터였을까.

옆자리를 보니 민호씨는 여전히 잠들어 있다. 코를 골지는 않지만 깊게 잠든 모습이다. 요즘 들어 야근이 잦아졌다고 했지. 승진을 앞두고 있다면서.

나는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발끝으로 걸어야 한다. 민호씨를 깨우면… 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충분히 자야 한다면서.

거실 창문을 열었다. 10월 말이라 그런지 제법 쌀쌀한 바람이 들어온다. 아파트 앞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예쁘긴 한데… 왜인지 쓸쓸하다. 가을이 그런 계절인가 보다.

물을 끓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민호씨 커피, 내 녹차. 이것도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민호씨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나는… 나는 뭘 좋아하지? 녹차를 좋아해서 마시는 건가, 아니면 그냥 습관이 된 건가?

“여보, 일어났어?”

민호씨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응, 커피 끓이고 있어.”

“고마워. 아, 오늘 저녁은 늦을 것 같아. 임원진이랑 회식이 있어.”

“알았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예전에는 무슨 회식인지, 몇 시쯤 들어올 건지 물어봤는데 요즘은… 물어봐도 대답이 시원찮다. 그냥 늦는다는 것만 알면 되는 것 같다.

민호씨는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넥타이를 매기 시작한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언제 마지막으로 내가 저 넥타이를 매어줬을까? 신혼 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럼 나 갈게.”

“응, 조심해서 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나는 혼자가 된다.

이제 뭘 하지?

설거지부터 해야겠다. 어제 저녁 그릇들이 싱크대에 그대로 있다. 민호씨가 “피곤하니까 내일 하지 뭐”라고 했었다. 그래, 내일이 오늘이구나.

설거지를 하면서 창밖을 본다. 아이들 등교하는 시간인지 몇몇 아이들이 지나간다. 우리 수진이와 현우도 저랬었지. 아침마다 “엄마, 도시락!” 하면서 뛰어나가곤 했는데.

지금 수진이는 회사 기숙사에서 살고, 현우는 대학교 기숙사에 있다. 가끔 전화는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 이제 어른이 됐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

설거지를 마치고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량이 많지 않다. 민호씨 옷 몇 벌, 내 옷 몇 벌. 예전에는 아이들 옷까지 합쳐서 거의 매일 돌렸는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앉았다. TV를 켤까? 아침 드라마 시간이긴 한데… 요즘 드라마들은 너무 자극적이다. 젊은 사람들 얘기 위주고.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미경이한테 연락해 볼까? 하지만 미경이도 아직 아이들 등교 준비시키느라 바쁠 시간이다. 미경이는 아직 중학생 쌍둥이를 키우고 있어서.

SNS를 켜봤다. 친구들이 올린 사진들… 여행 사진, 맛집 사진, 가족 사진들. 다들 행복해 보인다. 나도 예전에는 이런 사진들을 많이 올렸는데. 언제부터 안 올리게 되었을까?

문득 내 프로필 사진을 봤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 가족여행 갔을 때 찍은 건가? 그것도 몇 년 전 일이다. 요즘 사진을 찍어본 게 언제였을까?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아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화장을 해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니, 화장을 할 일 자체가 별로 없다. 어디 갈 일도 없고.

아, 장을 봐야겠다. 냉장고에 뭐가 있나 확인해 보자.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 반찬 몇 가지, 우유, 계란… 그런데 먹을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음식이 잘 안 줄어든다. 예전에는 냉장고가 항상 텅텅 비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마트에 가야겠다. 그런데 뭘 사야 할까? 민호씨는 요즘 회식이 많아서 저녁을 집에서 먹는 날이 별로 없다. 나 혼자 먹을 거라면… 굳이 복잡하게 요리할 필요도 없고.

그래도 나가야겠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

옷장을 열었다. 뭘 입을까? 요즘 새로 산 옷이 있나? 생각해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새 옷을 샀을까? 아이들 옷은 자주 사줬는데, 내 옷은… 필요할 때만?

결국 평소에 입던 무난한 옷을 골랐다. 거울을 보니… 음, 그냥 그렇다. 특별히 예쁘지도, 특별히 못생기지도 않은. 그냥 사십 대 후반 아줌마의 평범한 모습.

언제부터 나는 ‘아줌마’가 되었을까? 예전에는 ‘언니’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지금도 가끔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왠지 어색하다. 내가 언니라니.

현관을 나서며 옆집 문을 봤다. 김 씨 댁은 벌써 나가신 것 같다. 맞벌이 부부라 일찍 출근하신다. 부럽다. 바쁘게 살아갈 일이 있다는 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위층에서 젊은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내려온다. 아기가 정말 예쁘다. 저 엄마도 나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겠지만… 왠지 행복해 보인다. 목표가 분명해서 그런가? 아기를 키워야 한다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눴다.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예쁜 아기까지. 신혼일 때는 정말 시간이 빠르다.

마트에 도착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대부분 나처럼 중년 여성들이거나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젊은 사람들은 다 일하러 간 시간이니까.

카트를 끌고 채소 코너로 갔다. 무엇을 살까? 민호씨가 좋아하는 건… 요즘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알았는데. 아니, 예전에는 물어봤었나?

결국 평소에 사던 것들을 골랐다. 시금치, 상추, 대파… 안전한 선택들. 실패할 확률이 낮은.

육류 코너에서 잠시 멈췄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갑자기 뭘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가 뭘 좋아했지?

“아가씨, 뭘 찾으세요?”

정육점 아저씨가 물어봤다. 아가씨라니.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다. 기분이 좋아질 법도 한데… 왜인지 어색하다.

“아, 그냥… 돼지고기 좀 주세요.”

“어떤 부위로 드릴까요?”

어떤 부위… 뭘 해 먹을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음, 목살로 주세요.”

그래, 목살이면 구워도 되고 볶아도 되고. 무난하다.

계산을 하며 문득 생각했다. 이게 내 일상이구나. 특별할 것 없는, 반복되는. 그런데… 이게 잘못된 건가?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을 지났다.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 몇 분이 보였다. 나이 드신 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즐거워 보인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까? 친구들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 그런데… 그때까지 친구들과의 관계가 유지될까? 요즘 미경이 말고는 자주 만나는 친구가 없는데.

집에 도착해서 장본 것들을 정리했다. 냉장고에 넣고, 상온 보관할 것들은 찬장에. 이것도 하나의 루틴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뭘 먹을까? 간단하게 라면? 아니면 밥을 할까? 혼자 먹을 거라면 라면이 낫겠다.

라면을 끓이면서 TV를 켰다. 뉴스가 나온다. 코로나, 경제, 정치… 복잡한 세상 얘기들. 나와는 좀 거리가 먼 얘기들 같다. 내 세상은 이 집, 이 동네, 마트… 그 정도?

라면을 먹으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수진이와 현우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점심은 먹었을까? 예전에는 도시락을 싸줬는데. 지금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겠지.

가끔 연락해 볼까? 하지만… 바쁠 텐데.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닐까?

오후에는 청소를 했다. 하지만 크게 더러워진 곳도 없다. 사람이 적게 살면 집도 잘 안 더러워진다. 그냥 기계적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창문을 닦으면서 밖을 봤다. 맞은편 아파트에서 누군가 빨래를 널고 있다. 나처럼 집에 있는 사람인가?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다. 하지만 민호씨는 회식이라고 했다. 나 혼자 먹을 건데… 굳이 복잡하게 요리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간단하게 김치찌개를 끓였다. 혼자 먹기에는 적당한 양. 혼자 먹는 밥이 이렇게 쓸쓸할 줄은 몰랐다. 예전에는 가족들과 함께 북적북적하게 먹었는데.

밥을 먹으면서 드라마를 봤다.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화려한 배경에서 로맨스를 펼친다. 현실과는 좀 거리가 먼 얘기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그냥 시간을 보내는 용도?

민호씨가 들어온 건 밤 열 시가 넘어서였다.

“들어왔어?”

“응. 많이 기다렸어?”

기다렸다고 해야 하나? 사실 기다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흘러갔을 뿐이다.

“회식 어땠어?”

“그냥 그래. 피곤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도 성의 없을 것 같고.

민호씨는 씻고 나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오늘 하루가 끝났다.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게 내 인생인가?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인가?

젊었을 때는 꿈이 있었다. 뭐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은 아니었지만… 뭔가 특별한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의미 있는 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런 꿈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가족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도 독립했고, 남편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고. 나만 남은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로.

사십칠 세. 아직 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늙었다고 하기엔 애매한 나이. 인생의 반은 지났지만 반은 남았다.

남은 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옆에서 민호씨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린다.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다. 부럽다. 나는 요즘 잠들기가 어렵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창밖을 보니 다른 집들의 불빛이 보인다. 저 집들에서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니면 다들 만족하며 살고 있는 걸까?

언젠가 미경이가 말했다. “우리 나이가 되면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한다”고. 정말 그럴까? 그럼 이 마음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허전하고, 여전히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내일은 뭘 할까? 똑같은 하루가 될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깊지 않은 잠이었다.


무궁 플로라 핏 무궁 화 추출물 식약청인증 HACCP 인증, 1개, 60정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게시물은 삼성전자 ACE 활동의 일환으로, 삼성전자로부터 활동에 따른 수수료 등 경제적 대가를 제공받습니다..”


댓글

댓글 남기기